이곳이자 저곳인 




호명할 수 있던 것들이 이름을 벗어나 그저 거기 있는 존재로 일렁거린다. 이것이 이상하다. 이상하다 바라보며 너무도 익숙한 대상이 안정적인 구조에서 약간씩 벗어나 독자적으로 서 있는 순간. 본래의 이름보다 눈앞에 놓인 상태 자체로 다가온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남긴다. 이제 사진 속 장면은 내가 알던 그것이 아니다. 그 순간의 이질적이지만 더욱 선명해지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 대면을 인지하는 일은 동시에 나 자신이 지금 여기 생생히 존재함을 감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납작하게 손안에 쥐게 된 현장을 오린다. 오리는 일은 대상을 분리하는 동시에 변형한다. 사진 조각의 외곽은 나의 선택과 행위로 결정되지만, 내부는 현실의 빛과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명료하게 오려진 조각과 바닥으로 떨어진 부산물은 차등 없이 화면 위에서 자리를 찾아간다. 물감의 흐름으로 만든 대지 위에서 조각은 형상을 지니거나 잃은 채, 하지만 본래의 질감만은 끝내 지닌 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장면을 조각내고 가공하며 다시 세우는 과정은 세계로부터 멀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나의 존재를 더욱 짙게 알아채기 위함이다.


화면을 만들고 바라보는 과정은 줄타기하듯 이곳과 저곳을 넘나든다. 목적도 없이 붓을 들어 물감의 흐름과 색을 조율하다, 너무도 구체적인 장면의 조각을 마주하고 선택한다. 완성된 장면 위 사진 조각과 붓질은 붙어있다가도 떨어지며 구체적인 현실과 화면의 물질성을 오간다. 이 일렁임이 내가 처음 사진을 찍던, 걸음을 멈춘 순간의 이유이자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방식이다.